가장 중요하며 가장 힘든 것은

나의 악습관과 결별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이지 죽도록 어려운 일이다.

무엇인가를 이뤄내기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하는지 알고 있는데도

그것을 베어내는 것이 이토록 힘든 것은

내가 그동안 그것에 무척이나 의존하고 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힘들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시 각오를 다져본다.
by Jude | 2008/08/17 22:28 | just life | 트랙백 | 덧글(0)

밸런스

Long Sleep의 시나리오버전을 완성하기는 했지만 형식적인 완성에 불과하다.

아직도 머리 속에 있는 그림을 글로 표현하는데 미숙하다.


언제쯤이면 나의 느낌을 쓰고 싶은 것을 완벽하게 아니 그 이상으로 표현해서
영화사 사람들이 '당장 계약합시다!'라고 말할까.

 

퇴마물을 준비하며 이제껏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영화에 손을 뻗쳐
봐야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봐야할 시간과 써야할 시간에 대한 분배가 필요하다.

 

영화진흥위원회 단편영지원을 위해 새로운 단편 시나리오도 쓰고 있다.

새로운 단편이라고 해도 구상은 민망할 정도로 오래된 것들.


돌파구를 찾지 못해 미뤄두었던 단편을 옴니버스로 한 장편을 만들기로 했다.

물론 지원작에 채택이 되야겠지만

 

이래저래 시간이 부족하다.

하지만 조급해 할 일은 아니다.

 

시작한 건 끝을 봐야하지만

조급함은 모든 일을 그리친다.

균형감각이 중요한 시기이다.

by Jude | 2008/08/14 09:52 | 트랙백 | 덧글(0)

퇴근후

민선과 교보문고를 다녀왔다. 

최근 작업중인 작업을 위해 책을 좀 찾기 위함이었는데 

의외로 성과가 꽤 있었다. 

서점을 나서 시청쪽으로 걸어올라오는데 전경버스가 시청로를 완전히 가로 막고 있었다.

부시가 방문했기 때문이리라. 

그래, 이 무더위 속에서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치를 위해 쉼없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속에 양보와 존중은 개나 줘라, 라고 외치며 

치고 박고 유혈낭자한 서울시내 한복판을 걸으며

난 마치 다른나라의 일인냥, 아니 다른 별의 일인냥 생각없이 바라보며

머리속으로는 새로 구상중인 시나리오의 캐릭터의 이름을 짓고 있었다.

그래, 서로 바쁘니까

이해들하자고.

당신들도 내 고민에 대해 별 관심없잖아.

나도 마찬가지라고.

그래, 그뿐인거라고.

by Jude | 2008/08/05 23:59 | 트랙백 | 덧글(0)

아침 5시30분

5시에 눈을 떴지만 뒤척이다 5시30분에 눈을 떴다.

아침에 병원을 가야하기 때문에 교회는 몇일째 가지 못했다.

덕분에 엑소시스트 마지막부분과 야곱의 사다리(Jacop's Ladder 1990) 을 봤다.

그리고 퇴마경(가제)의 Plan A를 조금 짜봤다. 

일단 머리 속에 있는 구상들을 몇개 펼쳐놓고 

수집된 자료를 보며 좀더 다양하게 엮어볼 생각이다. 

옴니버스 식의 드라마로도 활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봤다. 
   

by Jude | 2008/07/30 10:01 | 트랙백 | 덧글(0)

주피터 픽처스의 주마왕

성호형의 호출로 주피터 픽처스에 다녀왔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3편의 시나리오를 넘겨주고 온 터.

주마왕은 1주일이나 전화를 받지 않은 날 욕하며

읽은 시나리오에 대해 까대기 시작했다 .

첫번째는 시나리오가 전반적으로 너무 착하다는 것이었다.

두번째는 언제나 그렇듯이 캐릭터의 문제다.

두번째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노력만으로는 확실히 부족하다.

그래, 부족한 걸 채우기 위해선 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정도로는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재미난 소재를 하나 얻어왔다.
원래 8월에 잡은 프로젝트는 접기로 했다.
 
그래도 아직 영화사에 내 시나리오를 읽어주고 평해줄 사람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무덥고 여전히 바쁜 8월이 시작되고 있다.



by Jude | 2008/07/28 22:31 | 트랙백 | 덧글(0)

2008 일본선교, 여름

 

 

2008 7 14

 

630

선교팀을 태운 버스는 안개 속을 달리고 있다.

어딘가로 떠난다는 건 멋진 일이다.

하지만 몇 해전엔 떠나는 것이 두려웠다.

진저리가 났다.

나도 남들처럼 따뜻한 사무실의 허리받침이 있는 의자에 앉아 일을 하고 싶었다.

 

1350

나리타 공항에 고착, 버스로 갈아타고 먼저 함께 탄 뉴키보 교회로 향한다.

공항에 마중 나온 일본인 미츠바야시도 이치가와 교회로 동행하기로 했다.

3년만의 일본은 기내식만큼이나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발전의 속도는 빨라진다고 하지만 그것을 체감하기에는 떠 빠른 발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 이제 외형적인 발전은 정점에 달해 내부적인 발전만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아이팟의 디바이스는 똑같지만 용량과 담을 수 있는 컨텐츠는 달라지듯이.

 

1430

버스 기사 분이 길을 헤맨다. 내비게이션을 쓰시면 좋으련만

이상하네이상하네하며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결국 차에 내려 길을 물어보시는 기사 할아버지.

역시, 모르는 길은 물어보는 게 최고다.

 

졸다 말다를 반복해 나야말로 길을 헤매고 있다.

다시 길을 묻기 위해 문을 열었을 때

버스 안에서 반가운 환호성이 들린다.

뉴키보 교회의 목사님이었던 것이다.

 

뉴키보 교회 선교팀을 내린 우리는 이치가와로 다시 출발했다.

 

 

1시간을 더 달려 이치가와시에 도착, 짐을 내리고 교회로 걸어가는 도중 난 아연질색한다.

내 캐리어 가방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었다. 공연을 위한 준비품과 팀장의 가방도 없었다.

어디서 떨군 것일까?

우리팀을 만나기 위해 공항까지 나온 미치바야시가 공항 센터로 전화를 걸었지만 신고된 물건은 없었다.

 

순간 난 이렇게 생각했다.

, 마귀가 따라왔구나.

내 선교길에 내가 선택한 길에 후회를 만들게 하기 위해 그가 따라왔구나!

하지만 질 수 없지.

잃어버린 물건보다, 이곳에서 그것에 신경 쓰느라 온전히 사역을 감당해 내지 못한다면 틀림없이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갈 거야.

난 몇 시간 만에 가방에 대한 것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친구에게 빌린 침낭이 걱정됐지만 뭐, 그 정도 돈은 있다.

 

이치가와 교회에 대하여

이치가와 교회는 20여년 전 김문열 한국선교사에 의해 세워진다.

일본동맹기독교단 220개 교회 중 하나로 12년 전 성막이 세워지고 2004년도에

지금의 이도현목사님이 부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도 수는 30여명 90%가 일본인이다.

2006 8월부터는 교회의 헌금으로 성막의 은행 부채를 상환하고 있지만

아직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15오전 8

첫 노방전도를 시작한다.

사영리를 전하지는 못했지만 이치가와 역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크리스찬들이 왔다는 것을 알렸다. 늘 그렇듯이 경찰의 제재로 첫날의 노방전도는 마무리 한다.

누군가는 코리안 파티라고 적힌 종이를 받고 또 누군가는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우리 앞을 바쁘게 지나갔다.

 

오전 11

이도형 목사님께 부탁 드려 다시 나리타공항 분실물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들어온 물건이 있는데 이미 경찰 쪽으로 넘어간 상태란다.

목사님의 차를 타고 나리타로 다시 달렸다.

 

지영의 숄더백도 내 캐리어도 그대로 있었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은 게 얼마 만인가.

아마도 지영의 가방과 함께 있었기에 찾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포기했지만 지영의 간절한 기도는 들어주셨는지 모른다.

포기했다고는 하나 역시 가방을 찾으니 안정도 함께 따라왔다.

 

1830

지영과 함께 자전거를 달려 장을 봤다.

야채를 파는 할아버지는 굽은 손으로 우리가 고른 당근과 감자를 비닐봉투에 담아줬다.

야채봉투를 자전거 앞 바구니에 담고 저녁의 패달을 밟았다.

이렇게 상쾌하게 달린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나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나지 않아도 좋다.

다음 번엔 확실히 오늘의 이 순간이 기억날 것이다.

 

16일 수요일

아침에는 역 근처에 노방전도를 다녀온다.

어제보다 적은 사람에게 전달했고, 물론 영접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코리안파티 찌라시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잠시 후 10 에는 신주쿠로 이동한다.

걱정되기도 하지만 사실 두려울 것도 없다.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 뒤

모든 일이 수월해 지기 시작했다.

이젠 영화도 다시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려움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확신이 강해질수록 몸이 가벼워진다.

 

정오, 신주쿠 니시구치

20분 동안 짧은 찬송 후 오오쿠보니에서 나카지마 목사님의 형님.

스미야카 파의 오야붕에게 (그는 3억짜리 벤틀리에서 내렸다.) 스시를 얻어먹었다.

 

445

 

하라주쿠에서의 찬송 후 30분 동안 관광.

낯선 곳에서의 신선한 기분.

더운 것만 빼고는 나쁘지 않다.

이런 패션감각을 가진 인간들이 그렇게 깔끔 떤다는 것이 웃기다.

관계없나.

인상에 남은 상점은 랄프 로렌의 매장으로 승마복 코너가 있었다.

태어나 승바복 코너는 처음 봤다.

다른 건 몰라도 승바복 바지는 절대 입을 게 아니라는 점은 알 수 있었다.

 

 

6 야마토역 도착.

모스 버거에서 느려터진 패스트푸드로 저녁을 때웠다.

햄버거 따위를 만드는데 3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건 죄악이다.

모스 버거 메뉴판 옆에는 Hamburger is My Life 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햄버거를 30분이나 기다려 먹으면서 나는 스스로 햄버거가 내 인생이야 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배를 채우고 갈무리채플로 이동.

확실히 일본에서 그렇게 큰 교회를 본건 처음이지만 내부는 한국의 일반적인 교회수준.

게다가 수요예배라고 해도 신도수가 너무 적었다.

 

2220 갈무리채플에서 전병욱목사님의 설교.

전목사의 유머가 일본까진 확실히 미치지 못한 점이 아쉽다면 아쉬운 설교.

늘 그렇듯이 1년간 가장 반응이 좋았던 내용의 짜집기였지만

다시 들어도 좋은 건 좋은 것이다.

믿음이란 가능성을 보는 것이 것이라는 주제였다.

중병에 걸린 친구를 예수에게 데려가기 위해 지붕 위에서 떨군 세 친구의 믿음과 지혜에 대한 내용이었다.

 

2326

병두 선교사님께서 오사카로 떠나시고 이제 이치가와 교회에는 선교팀만 남게 된다.

어두운 밤 이치가와로 향하는 길은 조금 불안하지만 어쩐지 정말 홀로 여행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모르는 길을 찾아가는.

오차노미즈 역에서 치바 방면으로 갈아타야 한다.

 

 

717 5시30

코리안 파티가 있는 하루의 새벽기도.

 

0830

예배당에 모여 세곡의 일본 찬송을 연습한다.

선교대원중 기타맨이 없어 기도했는데 그 기타맨 역할을 목사님이 해 주시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채워주신다.

 

09

음식을 도와주기로 한 서영씨가 도착했다.

슈퍼마켓이 10 열기 때문에 난 차가운 커피를 만들었는데

서영씨는 커피를 입에 넣자마자 깜짝 놀라며 수돗물을 컵에 부었다.

차가운 것을 못 드신단다.

 

서영씨는 고양이와 거북이와 함께 산다.

식사시간만 되면 일을 하다가도 고양이 밥을 주기 위해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면서도 아이들을 보면서 결혼하지 않은 게 참 다행이라고 말한다.

아이러니.

아침 10부터 코리안 파티가 끝날 때까지 음식을 만들어 주셨다.

덕분에 음식을 담당한 난 간단한 통역 정도만 감당하면 됐다.

물론 누구도 통역이 11까지 지속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공연이 모두 끝나고 혼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잠시 후 식사가 준비된다고 말하고 다니는데 경애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녀는 한 할머니 곁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한국음식이 입에 맞을지 그렇지 않을지 계속 걱정하고 있었다. 난 할머니에게 면 요리가 있는데 틀림없이 입에 맞을 거라고 그녀를 안심시켰다.

 

잡채와 불고기를 연실 맛있다며 드시던 할머니는 결국 떡볶이는 손대지 않았다.

할머니는 교회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할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인미의 웃는 얼굴이 예쁘다고 10번은 말했다.

 

인미와 함께 할머니를 집에 모셔드렸다.

목사님의 부인 말로는 치매끼가 있으시다고 했다.

할머니는 파티 전날 영접을 받았는데 그것은 기억하고 있을까.

한국음식은 처음이라고 말했는데

어쩌면 한국음식전문점에서 일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코리안 파티가 모두 끝나고 소데가우라에서 호산나 형제가 나오스선교팀을 만나러 왔다.

원래 나오스 선교팀은 소우데가라 팀으로서 소우데가라의 연계가 끊기면서 나오스와 연계가 시작된 것이다.

코리안 파티까지 3-4시간 정도를 통역했는데 입이 바싹 말라버렸다.

하지만 통역이란 재미있고 보람된 일이다.

 

18 04시50

평소보다 10분 먼저 깨어났다.

침랑을 정리하고 머리를 감았다.

어젯밤 팀장에게는 관광사역이 남았다고 들었지만 아침에 계획이 변경되어

이번에는 미국에서 온 CG , 4명과 함께였다. 노방전도를 한번 더 하기로 한다.

CG팀 가운데 요셉은 기타를 칠 줄 알았다.

서로 살아온 문화도 나이도 다르지만 우리는 같은 신앙의 길을 걷고 있었고 찬송을 알고 있었다. 함께 찬송을 하며 즐거웠다.

무엇보다 모든 사역이 끝났다는 기분에 마음이 즐거웠다.

 

다시 교회로 들어와 점심을 먹으며 떠나는 순간까지 어디로 갈지 걱정하는 팀장이 안스러웠다.

계획은 중요하다. 그리고 최대한 그 계획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계획을 바꿀 때 에는 그 당위성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리더는 앞장을 서는 사람이다.

불만은 어디에서건 나오기 마련이지만 그것을 줄이려면 동의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설득이라고 한다.

설득의 기본 전제는 신뢰이다.

신뢰는 그의 인격에서 나온다.

 

자매들은 역시 다시 한번 하라주쿠에 가기를 원했다.                          

형제들은 사실 어디든 상관없었다.

나 역시 어디든 상관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계획 없이 온 것은 조금 아쉬웠다.

팀장이 가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물었을 때 나는 충분히 모든 사람을 설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는 것이다.

하여 우리는 아사쿠사와 아키하바라에 가기로 했다.

아사쿠사에서는 일본 전통 손수건을 4장이나 샀다.

2장만 사고 돌아오다 두 장을 더 샀다.

4장 모두 너무 마음에 들어 아무도 주고 싶지 않다.

 

아사쿠사의 쇼핑몰을 1시간 정도 돌아 보고 아키하바라로 향했다.

오타쿠들 사이에 끼어 몇 군데 서점과 애니메이션 샵을 구경하는 사이 어느새 내 손엔

신카이 마코토의 화보집과 테크닉북이 들려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나오스 교회의 한 성도의 후원으로 天樂이라는 온천에서 목욕을 했다.

전신에 문신을 한 남자를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2045분쯤 교회에 도착해 21 철야예배를 시작했다.

강원영 선교사의 목사님의 찬송인도로 시작된 예배는 10시 50까지 계속되었다.

하루 종일 싸돌아 다닌 덕에 철야예배는 철저히 졸았다.

 

철야예배를 마치고 교회 성도와 약간의 대화를 나눈 뒤 도쿄에서 함께 돌아온 나카지마 목사님의 사모님과 은혜, 한나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라면까지 끓여먹은 뒤 잠이 들었다. 다음 날은 새벽기도가 없기 때문에 마음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잠들기 전 시계를 보니 1시45이었다.

 

 

20 6시10

늦게 잠들었지만 생각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선교팀이 일어나려면 1-2시간 정도 더 있어야 했기에 난 침낭을 정리하고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주변을 좀 더 둘러보고 싶었다. 철도가 도시 중간을 가로지르고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모토와라타 역을 지나 와라타 역 너머로 걷다보니 하라바타 신사가 나왔다.

교회가 있는 히라타보다는 생활 수준이 나은 동네였다. 집집마다 벤츠 아우디가 들어서 있었고 집도 컸다. 하지만 벽이 높고 집 주위는 삭막했다. 빨리 그 동네를 벗어나고 싶었다.

교회로 들어가기 전 100엔 샵에 들려 후원을 해준 친구들을 위한 작은 선물을 몇 개 샀다.

 

930

교회로 들어서니 팀원들은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빵과 스프를 좀 마시고 쉬자니, 선교팀이 선물을 사기 위해 밖으로 하나 둘 나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 가족 선물을 아직 사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교회를 나섰다.

날씨는 더욱 뜨거워져있었다.

아버지의 차를 몇 개 사고 사이제리아에서 점심을 먹었다.

버스는 오후3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우리는 교회에서 20분 정도 전에 나서 1주일 전 버스에서 내렸던 곳으로 짐을 옮겼다.

언제나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겨진다.

하지만 떠나는 사람도 남겨진 사람도 본래의 자신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다.

강원영선교사와 이도현 목사님은 1주일동안 우리에게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하지만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두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앙을 가지고 바뀐 것이 있다면 모든 판단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맡기는 습관이 생겼다는 점이다. 이것은 삶을 참 편하고 자유롭게 만든다.

인가적인 시선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16.

보딩이 18부터 가능했기 때문에 2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18 30

아시아나 항공OZ105가 활주로를 날아올랐다.

밤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일본은 밤은 은하수처럼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 광경을 보며

더 성장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더 멋진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더 멀리 가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내가 다짐의 주먹을 쥐는 사이

비행기는 고도를 높이고 있었다.

 

<>

by Jude | 2008/07/21 12:14 | just life | 트랙백 | 덧글(2)

이게 대체 언제니...



by Jude | 2008/06/21 19:48 | 트랙백 | 덧글(0)

기린지.

by Jude | 2008/06/19 12:40 | 트랙백 | 덧글(1)

4월27일

'대체 무엇때문인가?'

때론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하기도한다.

'그냥 시간이 좀 많이 드는 취미생활. 대신에 돈은 별로 안든다'


과연 경쟁력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글쎄. 라는 고무적이지 못한 스스로의 대답은 시간을 허무하게 만든다.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

경쟁력있는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by Jude | 2008/04/27 01:30 | 트랙백 | 덧글(0)

4월9일

오늘은 <물결>의 플롯에 대해 조금 수정하고 3장의 몇페이지를 쓸 수 있었다.

형일과 오태호는 장례식장에서 만난다.

 

여기서 플롯에 약간의 변화를 줘야할 것 같다.

형일은 선영의 어머니가 죽고 장례식 전에 사건에 대한 편지를 보낸다.
물론 이 편지는 더 후에 보낼 생각이었지만
경찰이 자신으로 인해 오태호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이상
그의 수배를 위해 '이야기'를 해야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편지가  제3장이 된다.

때문에 4장은 선영 어머니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형일은 중년의 남자로 변장을 하고 납골당에 나타나는데

분장을 하는 방법적인 것들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재료는 뭘 쓰고 화장은 뭘로 하고 틀은 어떻게 짜고 하는 것들.

지식을 주는 것들, 그러한 전문성들이 글의 아마추어성 냄새를 덮어 줄 수 있는 간단한 장치가 되어 줄 것이다.
 
형일은 오태호를 발견하고 쫓아가기 시작한다.

위험을 느낀 선영은 형사의 차에 타고 다른 곳으로 피하게 된다.
태호는 이것을 노렸다. 그 형사의 차를 따라가
형사들을 모두 죽이고 선영을 데려간다.

그리고 형일을 초대한다. 아버지를 데리고 오라고 한다.

형일은 아버지를 데리고 약속한 장소로 간다.
형일은 그 장소를 알고 있다.
과연, 태호는 선영을 데리고 있다.

그리고 협상이 시작된다.

마지막 씬에 대한 협상은 조금 더 고민해 봐야 한다.
 
그리고 편지의 일부를 오늘 완성했다.
 

by Jude | 2008/04/09 23:32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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